AD1526~AD1857년경
무굴 왕조
무굴제국의 바부르왕은 스스로 몽골 칭기즈 칸의 후손인 티무르의 이슬람의 후예라 칭하였다. 실제로 튀르크인, 튀르크어로 몽골을 뜻하는 '무굴'이 나라 이름이다.
무굴 왕조는 329년간 왕조를 이어 나가며, 인도 남부 일부를 제외한 인도 대륙 전체를 통일하고 오늘날의 인도 국토와 가장 근접하는 큰 제국을 건설한 왕조이다.
무굴제국 역시 이슬람 국가이지만 전성기를 이룬 아크바르 대제는 힌두교를 탄압하지 않고 델리 술탄 왕조와 같은 관용 정책을 펼쳤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자와 순례자들에게 인두세(지즈야)를 걷지 않았고, 사티를 금지, 과부 재가를 허용하였으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인도에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공존과 조화를 강조하였다.
▶ 사티제도?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죽게 되면, 남편의 시체를 화장할 때 아내가 산채로 불 속으로 뛰어드는 풍습
그 결과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묘하게 결합한 인도의 문화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17세기 초 샤 자한왕이 왕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거대한 묘역이 대표된다. 인도와 페르시아 이슬람 양식을 융합시킨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빛의 궁전)이 그 것이다.
타지마할의 외관은 이슬람 건축양식(좌우 대칭과 아라베스크 무늬)이지만 내부구조는 힌두교의 장식무늬(흰 대리석과 연꽃무늬)로 새겨져 있다. 무굴제국의 가장 훌륭한 건축물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 제브 때, 선대왕들과는 다르게 관용 정책을 폐지하고, 정통 이슬람 국가임을 강조하였다. 힌두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인두세 정책을 도입하고, 힌두교 사원들을 파괴하는 강압 통치를 실시한 결과, 힌두교의 반란으로 아우랑 제브가 죽고 이후 무굴제국은 쇠퇴하였다. 아들 바하두르 샤 1세때 반란 세력의 저항이 커지면서, 작은 나라들이 독립을 선언, 18세기 중반 이후 델리 주변만 다스리는 작은 나라가 된다.
1498년 포르투갈 바스쿠 다 가마가 서해안 캘리컷에 도착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동인도회사가 인도 무역에 뛰어들고, 1857년 영국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되면서 인도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마지막 통일왕조 무굴제국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인도 역사] 델리 술탄 왕조 AD1206~AD1526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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